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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가는대로

삼각산 자락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은평구

 

 

녹번동이란 이름은 녹번현에서 연유되었으며 이는 무악재고개에 자연동(속칭 산골)이 나는데 이를
녹반이라 한데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이 지역은 1949년 8월 3일에 공포한 대통령령 제159호에 따라 동년 8월 14일 해방 후, 그리고 정부가 수립된 후 처음으로 지방자치법 시행과 함께 서울에 편입된 지역 중의
하나이다.
1녹번은 이때 편입된 소위 신편입 4개지구(숭인, 뚝도, 은평, 구로지구)중 은평지구에 속해 있었고, 당시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녹번리로서 은평면사무소 소재지이기도 하였다.
11949년 8월 14일부터 서대문구 관내(은평출장소)의 녹번리로 된 이곳은 그뒤 1950년 3월 15일 시조례
제10호(서울특별시 동별 명칭 중 개정의 건)에 의하여 리를 고쳐 녹번동으로 되었다. 인접지역은 동쪽에는 서대문구 홍은동이 길게 자리잡고 있으며 남으로는 응암동이 접하고 서쪽으로는 역촌동과 대조동으로
경계를 삼고 있다. 그리고 북쪽에는 불광동과 대조동이 접하여 왔다. 1955년 4월 18일 시조례 제66호에 의한 지방자치법에 의해 동제가 실시될 때에는 이웃 응암동, 역촌동, 신사동과 함께 4개 법정동이 합하여
행정관할동을 녹신동으로 하였으나 시민의 지역 혼동으로 불편이 많아 1973년부터 동사무소의 명칭을
지명과 일치하여 녹번, 응암 제 1·2, 역촌동사무소로 분동되어 녹번동사무소로 독립되었던 것이다.
통일로를 중심으로 동쪽은 고지대 암반층, 서쪽은 비교적 평탄한 지형으로 중서민계층이 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은평구 관문으로 5개 주요간선도로와 지하철 녹번역 및 관공서 밀집지역으로 교통과 행정의
중심지로 유동인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신사동은 한성부 북부 성밖이었던 연은방의 신사동계 신사동으로서 이것이 큰 변화없이 그대로 경성부
성외 8면의 하나인 은평면의 신사리로 되었다가 1950년 리까지 고쳐 신사동으로 되었다.
1이처럼 신사동의 지명은 수없이 행정의 관할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으며 신사란 새절을 의미하는데 새절은 언제 어느 장소에 있었는지 알길이 없으나 새절이 있었으므로 해서 유래된
동명이다.

1인접지역은 동쪽에 응암동이 길게 접하여 있고 남쪽으로는 증산동과 수색동이 각각 경계를 이루면서
이웃해 있다.
1그리고 서쪽으로는 뒤쪽 산능선이 시계를 이루어 경기도 고양시와 접해 있으며 북쪽에는 역촌동이 자리를 잡았다.

11955년 이웃의 응암동, 역촌동, 녹번동과 함께 녹신동사무소를 신설하고 그 관할에 있었으나 73년도에
분동되어 역촌동 관할로 있다가 인구의 증가로 신사동으로 75년도에 분리되어 동명을 찾았으며 1989년에는 신사1동, 신사2동으로 분동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역촌동과 함께 구획정리 사업으로 조성된 전형적인 주거지역이다.1옛 지명을 알아보면 풋나무골, 고태골 등이 있다.

1지난 1996년 2월 8일에 신사1동 청사를 신축,이전하였으며 주민의 복지공간으로 2, 3층에
신사종합복지관이 들어서 구민편의의 행정을 펼치고 있다.

응암동은 마을 뒤 백련산 기슭에 있는 커다란 바위의 생김새가 마치 매가 앉아있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매바위에서 유래되었으며, 1949년 서울시에 편입되었다.
11911년 포반동, 응암동, 거산동으로 되었고 1914년 고양군 관내로 편입되면서 3개 동리가 합하여 하나의 응암리로 개칭된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이 주택가로 형성되어 있는 이 곳의 인접지역을 보면 동쪽에 녹번동과 백련산 능선을 경계로 하여 홍은동이 접해 있고 남가좌동, 북가좌동, 증산동 순으로 가지런히 접하여
부도심권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서쪽은 증산동, 신사동이 각각 이웃해 있고 북쪽은 역촌동과 녹번동이
옛 연천을 따라 경계선을 그으면서 자리를 잡았다.
1녹번삼거리부터 백련산 북쪽 줄기를 따라 서대문구 북가좌동까지 길면서도 넓게 차지하고 있는 웅암동은 응암오거리를 중심으로 대림시장 상권 형성과 함께 먹자골목으로 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동네이다.
11988년 응암 2, 3동을 응암2, 3, 4동으로 각각 분동하였으며, 응암동 관내 옛 지명을 알아보면 포수마을,
냉정골, 매바위, 눌뫼 동네 등이 있다.


갈현의 이름은 옛날의 갈고개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1전하여 오는 말로는 이 일대에는 칡뿌리가 많아서 갓을 만드는 원료가 되었기 때문에 칡고개 또는
칡넝쿨고개로 불러왔고 또 이근처에는 『박석고개』라고 불렀던 곳도 있어서 구릉이 많은 편이다.

1고양군 은평면 갈현리로 되었던 이 곳은 해방이후 1950년에는 동명을 현재의 갈현동으로 고치게 되었다.
1앵봉산 기슭의 통일로와 연서로 인접지역인 갈현동은 동쪽은 『박석고개』를 사이에 두고 불광동과
접하여 있고, 남은 대조동, 역촌동, 구산동이 차례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서쪽에는 경기도 고양시와 접해있고, 북쪽에는 구파발동과 진관외동이 차지하고 있다.

11955년 행정동제가 실시될 때 갈현동은 이웃 불광동, 대조동, 구산동과 함께 대광동사무소 관내로
되었다가 수차례 변경되었으며 이제는 갈현동사무소가 독립되어 관장하고 있다.

1이 갈현동 지역은 봉산 구릉을 따라 대성고교, 선일여중고,선정여중고 등이 모여 있어 좋은 교육여건을
반영하고 있는 전형적인 주거지역이다.

11989년 갈현동은 갈현1동,갈현2동으로 각각 구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갈현동 관내 옛 지명을
알아보면 갈곡리,온수리,효경동,좌월,궁말,버리고개(벌고개)등이 있다.


불광동에는 오래전부터 옛날의 역참이 있었고 불광동에서부터 녹번동과 대조동의 사이를 따라 역촌동으로 흐르고 있는 연천(불광천 상류)이란 조그만 시내가 흐르고 있다.
1여기에 지금도 불광동쪽의 상류에 『연서』시장이 있고 하류쪽에는 녹번동,대조동 등의 동명 대신에
연천에서 유래된 『연신내』로 통하고 있다.

1인접지역으로는 동쪽에 종로와 구계를 이루면서 구기동과 접해 있으며 1980년 진흥로가 개통되어 종로
성북방향으로 가는 교통편이 좋아졌고, 한편 도심지로 집중하는 많은 교통량을 분산시키고 있으며, 남쪽에는 녹번동과 홍은동이 각각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서쪽에는 대조동과 갈현동이 통일로를 사이에 두고
길을 따라 길게 이웃해 있다. 여기의 길 동편은 불광동이고 길 서편은 대조,갈현동이다. 길을 경계로 지역이
구분된 것이며, 북쪽에 진관외동이 있다.

11973년 1·2동으로 분리되고 1985년 불광2동이 불광2동과 불광3동으로 각각 분동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불광동 관내 옛 지명을 알아보면 독바위골, 수리봉, 돈노리, 연신내, 어수물터(어수정), 이감수,
밥할머니묘소, 관터고개, 세뿔간, 새장골(사정동), 박석고개 등이 있다.도시기반 시설취약으로 인한 재개발재건축, 주거환경 개선사업 등 불량주택 개량사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는 지역이며 대단위 아파트 단지,
단독주택과 독박골등 고지대 주민은 근로자등 저소득 계층의 지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

1수려한 주변환경으로 국립보건원,국립환경 연구원,한국보건사회 연구원등 국가기관이 산재되어 있다.



역촌동은 조선조 신하들이 장거리 여행시 말이 쉬어 갈 수 있는 역이 있어 역말이라 불렀으며 여기서
동명이 유래되었고 행정동제가 실시될 때는 이웃의 녹번동, 응암동, 신사동과 함께 녹신동 관내로 되었었고 그 후 녹신동에서 분리되어 신사동과 함께 새로이 역촌동사무소로, 75년에는 다시 신사동마저 독립되었기 때문에 역촌동사무소는 법정동계만이 관할하게 되었다.
1인접지역을 보면 동쪽에 대조동과 녹번동, 응암동이 상호 접하여 있고 남으로는 신사동과 응암동이 각각
경계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북으로는 구산동이 자리를 잡고 있다.

11970년대 구획정리사업 시행으로 조성된 일반주거지역으로 1985년 9월 1일 역촌 1동, 역촌 2동으로
분동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관내 옛 지명을 알아 보면 마방촌(역말), 토정리 등이 있다.